원명(圓明, 1911-1992)
원명스님의 속명은 종범(終範)으로 1911년 경북 청도에서 김해 김씨 재순거사와 방봉선 보살의 슬하에서 태어났다. 14세 되던 해에 1925년 청도보통학교 졸업 후 출가하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당대의 대선사였던 수월(水月)스님의 상좌인 지담(智潭)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29년 춘담(春潭)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이어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이후 원명스님은 금강산 유점사 마하연 등에서 수행정진하다 비로봉에 올라 10년 동안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10년정진을 거듭한 끝에 대오를 이루었다.
6.25동란으로 금강산을 하산해 제주도 한라산과 거제도 실상사에서 안거하다 1954년 전북 남원 청룡사에서 포교에 힘쓰다 1960년 현 원명사의 전신인 금불암(金佛庵)을 인수해 개명하고 수행에 힘썼다. 1965년 상좌인 영봉스님에게 원명사를 맡기고 다시 남원에서 정진하다가 봉림선원을 세워 안거했다. 평생 쌀가루에 솔잎을 섞어 생식으로 일관하였으며 바랑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바람처럼 주유하며 오로지 참선과 중생 교화에 진력했다.
1992년 11월 11일, “고요한 즉 죽은 시체요, 움직인 즉 망상이라. 고요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이 물건이 무엇인고?”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좌탈입망했다. 세수 82세, 법납 68세. 법구는 황산벌에서 숨을 거둔 넋을 위로하고자 오랫동안 수행처로 삼아온 남원 인월땅에 안치되었다.
그 탑안에 우리나라 유일의 등신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많이 알려져있진 않은데 세계 불교계에서 72번째로 부처님으로 공인받으신 분입니다. 좌탈입망하셨고
남겨진 육신에 금박을 입혀 탑안에 안치했습니다. 그 분을 존경하는 수행자들과 신도들이 지나다가 향을 피우고 참배를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