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행적을 찾아

해인사 팔만대장경

불방개물방개 2016. 3. 2. 19:59

 금명보정 스님께서

39세인 기해(己亥: 1899)1월에 해인사에 가서 칙령(勅令)으로 인출(印出)하는 대장경인경불사(大藏經印經佛事)에 동참하여 교정(較正) 편집(編集)의 소임 을 맡아 수행하였다. 이 인경불사는 안변(安邊) 석왕사의 용악 혜견(龍嶽 慧堅: 당시 69)스님이 통도사의 보궁(寶宮)과 해인사 장경각(藏經閣)에서 기도를 하며 발원하여 고종(高宗) 황제의 윤지(允旨)로 이루어졌으며, 대장경은 모두 4()를 인경(印經)하여 삼보(三寶)사찰에 한 질()씩 분봉(分封)하고 한 질은 전국의 사찰에 1부씩 나누어 모시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가운데 한 질()을 본사로 모셔와 65일 설법전(說法殿)의 가상(架上)에 봉안하였다. 그런 다음 곧 서울에 올라가 그동안 관리들의 고폐(痼弊)가 심했던 남여(籃輿)의 부역을 혁파(革罷)하였다.

그리고 시왕전의 각부 탱화를 새로 조성하게 되었는데 그 때 화주의 책임을 맡아서 그 다음해 215일에 봉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