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인 을유(乙酉: 1885)년 정월부터 선암사 대승암에서 함명(涵溟)종장(宗匠)에게서 염송을 배웠으며,
가을에는 본사 보조암에서 통사(通史)를 비롯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서적을 읽었다.
30세 되던 경인(庚寅: 1890)년 2월 23일에 송광사의 보조암(普照庵)에서 전등식(傳燈式)을 행하고 은사인 금련당(金蓮堂) 아래로 건당(建幢)하니 부휴(浮休)선사의 14세(世)이다. 이어 강석(講席)을 열어 학인들을 제접(提接)하였다.
31세 신묘(辛卯: 1891) 봄에 보조암을 새로 수선(修繕)하고 서각(西閣: 변소)에 제사(祭祀)하던 폐단을 없애버렸다.
37세인 정유(丁酉: 1897)년 1월에 본사인 송광사의 요청으로 진각국사(眞覺國師)께서 결사하신 도량인 광원암(廣遠庵)에서 화엄경을 강설하니 법중(法衆)이 60여명이나 되어 강당(講堂)이 비좁았다.
그 해 가을 보조암에서 강석을 열고 전법의 인연이 있어서 문제(門弟)인 눌봉(訥峰) 용화(龍化)스님에게 전강(傳講)하였는데, 이것이 제일처전심(第一處傳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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